伝統文化

光ヶ土用碑石の 百残とは?

高句麗人たちが何かで ¥”百済¥”という国号を置いておいて広開土王陵碑文で ¥”百残(バックザン)¥”という表現を使っただろうか
三国志』偽書(魏書)[俗称 魏志] 韓電(韓伝) 辰韓(辰韓)組に次のような句節があります.

辰韓(辰韓)は馬韓(馬韓)の東にあるのに, 彼らおいぼれたちが代代に伝えて自ら言うのを,
昔にチン(秦)国の賦役を避けて韓国に到逹した人々で, 馬韓が彼らの東境界地を分けてやったと言った.
…(中略)…

ナクラン人たちを呼んで ¥”アザン(阿残)¥”と言うのに, 東方の人々が ¥”や(=我)¥”を言う時は ¥”あ(阿)¥”と言うので,
 これはナクラン人々が本来自分の無理の中で残った人(残余人)であることを言うのだ.
それで今彼ら[辰韓]を 秦韓とも言うのに, 初めには 6国があってから徐徐に 12国で割れた

 

百残は百済を低めて呼んだものではなかったです高句麗の南進で戦争に苦しんだ百済人たちが新羅で/列島で
逃げたのですそれで当然 百残であるのです

 


「バックザン(百残)」と言う(のは) 『上だ』韓電(韓伝) 辰韓組に出る 「アザン(阿残)」や残民(残民)・ザンウブ(残邑)の例のように,
 本来の百済姿で一部が分離して行き終わることはあげく(余也)という意味で使われたことだと思うのですね. どこに分離して行ったんでしょうか?

 

『三国史記』百済本紀アシンワング 8年(399) 8ワルゾで ¥”百済の民たちが兵役につらいあげく新羅(正確には伽揶地域)で
たくさん逃げたら戸口(戸口)が衰滅(衰滅)[あるいは 衰減]した¥”と言う表現を書いたということもそうで,

『日本書紀』烏芋陣(応神)天皇 14年気配組で見るように百済から行きなさい(=伽揶)を経って日本列島に行ったいわゆる
¥”グングワルグンの人足¥”らが 120現だと表記するほど大規模であったり,

 

広開土王陵碑文ヤングラック10年(400)組で高句麗軍が 5万や投入されるほどに倭人が新羅国境におびただしく集結されていたが,
 彼らが載せた日本列島で新羅を攻撃しようと海を渡って来た倭軍ではなく, 反対に韓半島から日本列島に渡ろうとする
 百済流民を高句麗人が記録したのです

 

 

倭軍/倭兵ではなく< 倭人が国境に...> と表現しています 


"百殘과 궁월군120현민

광개토왕 비석의 百殘이란?

고구려인들이 어째서 "百濟"라는 국호를 놓아두고 광개토왕비문에서 "百殘(백잔)"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였을까
삼국지』위서(魏書)[속칭 魏志] 한전(韓傳) 진한(辰韓)조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습니다.

진한(辰韓)은 마한(馬韓)의 동쪽에 있는데, 그들 늙은이들이 대대로 전하며 스스로 말하기를,
옛적에 진(秦)나라의 부역을 피해 한국에 도달한 사람들로, 마한이 그들의 동쪽 경계 땅을 나누어 주었다고 하였다.
…(중략)…

낙랑사람들을 이름하여 "아잔(阿殘)"이라고 하는데, 동방의 사람들이 "나(=我)"를 말할 때는 "아(阿)"라고 하므로,
 이는 낙랑 사람들이 본래 자기 무리 중 남은 사람(殘餘人)임을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그들[辰韓]을 秦韓이라고도 하는데, 처음에는 6국이 있었다가 점차 12국으로 갈라졌다

 

百殘은 백제를 낮추어 부르던 말이 아니었습니다 고구려의 남진으로 전쟁에 시달리던 백제인들이 신라로/열도로
도망한 것입니다 그래서 당연히 百殘인 것입니다


「백잔(百殘)」이란 『위지』한전(韓傳) 진한조에 나오는 「아잔(阿殘)」이나 잔민(殘民)·잔읍(殘邑)의 예처럼,
 본래의 백제 모습에서 일부가 분리해 나가고 남은 나머지(餘也)라는 의미로 사용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어디로 분리해 갔을까요?

 

『삼국사기』백제본기 아신왕 8년(399) 8월조에서 "백제의 백성들이 병역에 괴로운 나머지 신라(정확히는 가야 지역)로
많이 도망하니 호구(戶口)가 쇠멸(衰滅)[혹은 衰減]하였다"는 표현을 썼다는 것도 그렇고,

『일본서기』오우진(應神)천황 14년 시세조에서 보듯이 백제에서 가라(=가야)를 거쳐 일본 열도로 간 이른바
"궁월군의 인부"들이 120현이라고 표기할 만큼 대규모 였다거나,

 

광개토왕비문 영락10년(400)조에서 고구려군이 5만이나 투입될 정도로 왜인이 신라 국경에 엄청나게 집결되어 있었는데,
 그들이 실은 일본 열도에서 신라를 공격하려고 바다를 건너온 왜군이 아니라, 반대로 한반도에서 일본 열도로 건너가려는
 백제 유민을 고구려인이 기록한 것입니다

 

왜군/왜병이 아니라< 왜인이 국경에...> 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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